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프링필드 M1903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1차대전이 종전되고, 새로운 반그립형 개머리판(Type C)[* 이전의 직선그립형은 Type S로 불렸다.]을 채용한 M1903A1이 나왔지만 그동안 생산된 기존의 M1903이 많다보니 군용으로는 많이는 생산되지 않았었고 민간 사격 경기용으로나 주로 생산되었다. M1903A2는 포(砲)에서의 스포팅 라이플[* 포탄과 탄도가 비슷한 소총탄을 발사하는 총으로, 포의 조준점 확인용도로 사용되는 총이다.]로 사용된 모델로 독립 소총은 아니었다.[* M1903이나 M1903A1을 개조해서 조달했다가 나중에 안 쓰게 되자 다시 M1903/M1903A1으로 돌아간 물건들도 있었다.] 그리고 2차대전이 일어나 대량생산의 필요성이 생겨나자[* 새로운 제식소총은 [[M1 개런드]]로 정해졌지만 최일선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쓸 용도나 렌드리스 용으로 있던 생산 라인을 쓰게 되었다.] 만들게 된 A3 모델은 공정을 개선하여 생산성을 높히고, 가늠자를 후방으로 옮겼다. 또한 A3 모델은 방아쇠울이라던지 개머리판 받침 패드 같은 부분 등 몇몇 부품을 절삭 가공 부품에서 프레스 가공 부품으로 바꿨으며 총신과 가동부의 부품을 '완화한 합금 규격이 적용된 물건'으로 바꾸고 강선을 4조에서 2조로 바꾼 모델이었다.[* 전시상황을 고려해 당연하게도 생산 시간과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처음 2조 강선으로 바꾼다는 말이 돌 때 일선 관계자들은 당연히 대량생산으로 인한 품질(특히 명중률) 저하를 우려했다. 그런데 시험 사격 결과, 4조 강선이랑 2조 강선의 명중률 차이는 거의 없거나 2조 강선이 더 높은(!) 결과가 나타났고 관계자들은 얼씨구나 하며 대량 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초기에는 M1903A1처럼 반그립형 개머리판을 썼지만 후기형 M1903은 이전에 쓰던 직선그립형 개머리판을 사용 하였다. 미군은 이미 [[M1 개런드]]라는 훌륭한 반자동소총이 있었으나, 모든 수요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M1903 또한 저격 임무 등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도 일부의 정규군에서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군은 다 개런드나 카빈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놈도 대전 중 미군에 의해 땜빵용이나 저격용이 아닌 엄연한 '''일반 소총'''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대부분은 비전투병과, 후방에 지급되거나 브라질 원정군, 자유 프랑스군 등에 랜드리스로 돌려져 실제로 최전선에서 미군 보병이 사용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M1 개런드]]가 생산되며 일선에서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으나, 미 해병대에서는 M1의 보급이 늦어 [[태평양 전쟁]] 초반에도 주력 소총으로 M1903을 사용했다. 이후로도 미 육군과 보급을 통일하라는 압력과 일선 병사들의 요구로 인해 전쟁 중반에서야 M1 개런드로 교체되었다. 이렇게 교체가 늦어진 이유는 우선 미 해군 입장에서는 막대한 유지비를 퍼먹어대는 대형함들을 운용해야 하는지라 해병대의 개인 화기까지 교체할 예산이 충분치 않았다. 또한 전시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병력을 늘리고 있어 제식소총을 한꺼번에 교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유도 있다. 또한 반자동 방식보다 볼트액션 방식의 신뢰성과 명중률이 높다는 이점도 고려되었다. 반면 반자동소총은 볼트액션 소총보다 연사 속도가 빠르다는 강력한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반자동소총의 자동 장전 장치 때문에 구조가 복잡해졌다. 이 때문에 신뢰성이 감소하고 손질 난이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선의 실전에서 전훈을 통해 반자동소총의 장점이 단점을 훨씬 상회함이 입증되었다. 병사가 덜 숙련된 신병이라도, 전투로 인한 공포로 인해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발사 후 노리쇠를 따로 조작해야 하는 볼트액션 소총과 달리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총알을 연속으로 내뱉는 반자동소총의 이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미 해병대가 활동했던 태평양 전선의 전장은 밀림이 빽빽하거나 손바닥만한 산호초 위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따라서 유럽 전선보다도 교전거리가 더 짧았다. 또한 [[반자이 돌격]]하는 [[일본군]]과 [[백병전]]을 벌이는 일도 많았다. 때문에 볼트액션 소총의 높은 명중률과 사거리, 간단한 구조에서 오는 신뢰성은 당시 전장에서 사용된 반자동소총의 장점에 비해 큰 이점이 아니었다. 이같은 이유로 해병대원들은 스프링필드 소총에 불만을 느꼈다. [[M1 개런드]]가 해병대에 보급되기까지 육군 전사자의 M1 개런드를 회수하거나 아예 육군에 보급된 M1 개런드(와 기타 물자)를 '''[[긴빠이|훔쳐서]]''' 사용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을 다룬 [[미국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 이러한 사례가 잘 묘사되었다. 작중 해병대원들이 야적된 육군 보급품 더미에서 M1 개런드, 식량, 개인 물품 등을 아예 박스째로 훔치고, 이를 목격한 육군 헌병이 거기 서라며 해병대원들에게 다가오자 밀림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원조 해병대식 긴빠이~~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8kO867TRAwQ)]}}} || || Forgotten Weapons의 저격용 M1903A4 리뷰 영상 || M1903A3와 동시기에 저격용의 M1903A4가 제작된다. 차이는 스코프 마운트를 위한 리시버 형태와 나중에 M1903A3가 직선그립형 개머리판으로 돌아간 후에도 반그립형 개머리판을 유지했던 걸 빼면 M1903A3와 거의 동일하다. M1903이 애초에 명중률이 좋았기 때문에, 중총열이나 [[프리플로팅 배럴|유동총열]] 개조 등은 거치지 않았고 그냥 보급된 M1903A3 중 잘 맞는 물건을 골라 개조한 것이다. 미군은 이 총에 위버 사의 330 또는 330C의 2.75배율 [[망원조준경]]을 부착하여 사용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제식 채용되며 M73B1 스코프가 된다. 이 스코프는 장거리 사격에 그리 적합한 물건은 아니었고, 환경변화에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딱히 저격수를 양성하지 않았던 미 육군은 이것을 한국전쟁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2차대전 이후에는 [[M1 개런드]]를 저격용으로 개수한 M1D에 달린 M84 망원조준경을 장착하기도 했다. 미 육군과는 다르게 미 해병대는 1차대전 중 채용한 윈체스터 A5 스코프를 장착한 저격용 버전을 계속 사용했다. 사격 능력을 중시했던 해병대는 육군보다 저격전에 더 유능했고, 더 높은 정확도와 뛰어난 성능의 저격소총을 원했다. 그들은 2차대전 중 존 유너틀이 제작한 8배율의 유너틀 스코프를 M1903에 장착하기로 하고 표준 저격소총으로 사용했는데, 이 총은 M72 매치그레이드 탄을 사용할 경우 무려 550m에서 0.58 MOA의 준수한 집탄율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현대의 기술로 생각해봐도 대단한 명중률이다.] 이 탄약은 잘 보급되는 탄약이 아니었으므로 해병 저격수는 일반용의 M2 탄약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 탄약 또한 550m에서 1.25 MOA의 집탄율을 보였다. 2차대전 중 미 해병대용 스프링필드 저격총은 1 km 이상의 사살기록을 내는 등 준수한 성능으로 해병 저격수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전 기간 동안 중국의 [[국민혁명군]]에는 10만 7천정이 제공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